
솔직히 내가 거북이 달린다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내가 예산 토박이인 탓이 크다. 20년 넘게 살아와서 이제는 눈감고도 찾아다닐 수 있는 곳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은 꽤나 신선했다. 이 장소가 이렇게 비춰지는구나, 이 장소가 저랬었나? 하게 만드는 느낌. 편집, 혹은 카메라의 시각에 따라 세상이 그렇게나 달라보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거북이 달린다에 대해 굉장히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군청이 경찰서로 변신했고 경찰차들이 거리를 쌩쌩 달리지만 사실 그것도 다 군청 앞이다.[....] 더욱이 내가 사는 집-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의 식당-이 나왔다는 것은, 남들이 웃지 않는 장면에서 혼자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좋은 '꺼리'였다고 할까.
하지만, 이 편협한 시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바라봐도 이 영화는 참 괜찮다. 다들 말하듯, 김윤석씨는 추격자에서 너무 연기를 잘 한 탓에 그대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하지만 실제로 본 바에 의하면 역시 '거북이'쪽이 김윤석씨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굳이 촬영할 때가 아니라 사적으로 밥 먹으러 식당에 올 때도 츄리닝에 쓰레빠 신고 터벅터벅 왔다고 할 정도니까.

거북이 달린다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추격한다는 상황 자체는 같으나 그 배경이 다르다. 그리고 표현하는 방법 역시 다르다. 회색 상자로 점철된 도심은 음침하고, 제한적이다. 밀실은 아니지만 그 존재감은 밀실과 같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고 나의 외침이 닿지 않는 그런 공간. 추격자는 그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다르다. 부르면 누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부를 수 있다. 이쪽은 넓다. 푸른 하늘 뜨거운 햇빛 아래 펼쳐진 논두렁이 보이는, 그런 공간. 따라서 거북이 달린다는 스릴러가 아니다. 밝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공포심이 들 리 없다. 부르면 누군가 달려오는데 공포심이 들 리 없다.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은 단순히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배경이 달랐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배경이 추격자와 같은 도심이었다면 이 작품은 죽도 밥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충청남도 예산이라 지정된 배경은 등장인물들을 한없이 느긋하게 만든다. 그 느긋함은 각박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심지어 배경이 된 예산의 현실에서도) 느끼기 힘든 것이며, 동경의 대상이며, 추억의 대상이다. 혹은 이상향일 수도 있다. 하여간에 이 기묘한 느긋함은 외국인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지만 반대로 말해서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리움을 살살 건드린다. 너무나 익숙한 그 흐름에 떠밀려 웃다 보면 영화는 벌써 끝나 있다. 어? 이게 뭐야? 하고 어리둥절해한다. 이것이 '거북이 달린다'가 가지고 있는 진짜 힘이다.
빠르게, 자극적으로. 현대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려면 빨라야 한다. 자극적이어야 한다. 즉각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 거북이 달린다는 그 의문을 던저놓고 직접 대답하고 있다. 분명히 거북이 달린다에서 자극적인 부분을 아예 없앤다거나 하는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흐름과 캐릭터간의 감정과 대사, 개그는 느릿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은 이 작품의 장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액션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히어로물인데 어떻게 보면 스릴러고. 하지만 이 '뭉뚱그림'역시 현대사회에서 '세분화하여 공략한다'라는 '필승법'에 대해 정면 반박하는 예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뱀발.
1. 식당에서 촬영할 때는 사진 못찍게 해서 밖에 있던 촬영차만 찍어둔 게 있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없군요.
2. 우리 식당은 얼떨결에 삼겹살집 겸 중국집이 되어버렸습니다.
3. 소싸움을 소재로 쓰긴 했지만 사실 예산은 소싸움보단 한우 고기 자체가 명품입지요.
4. 아버지께서 김윤석씨한테 사인을 받아놓은 추격자 dvd가 행방불명. 어..어디로 갔지?!
5. 1일 3포스팅. 이....인간 승리!


덧글